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미하일 고르바초프 (문단 편집) === 사망 === 모스크바 현지 시각 기준으로 [[2022년]] [[8월 30일]] 역대 소련 지도자들과 현재 러시아 대통령이 이용하는 모스크바 중앙병원에서 [[노환]]으로 사망했다. 향년 91세로 역대 소련 지도자들 중에서 가장 오래 [[https://www.reuters.com/world/mikhail-gorbachev-who-ended-cold-war-dies-aged-92-agencies-2022-08-30/|살았다]]. 역대 소련 [[최고지도자]]들이 묻힌 [[크렘린 벽 묘지]]가 아니라 [[니키타 흐루쇼프]]와 [[보리스 옐친]]이 묻힌 [[노보데비치 수도원]]에 [[https://tass.ru/politika/15601861|안장될 예정이라고 한다.]] [[크렘린]] 대변인의 발표와 같이 [[장례]]는 완전한 [[국장]]은 아니나 의장대와 정부 차원의 지원 기구 설치 등 [[국장]]적인 요소가 부분적으로 포함되어 진행되었으며 [[블라디미르 레닌]]과 [[이오시프 스탈린]]등의 전임 [[소련]] 최고 지도자들의 장례식이 거행된 조합회관(Дом союзов) 콜로니 홀에서 9월 3일 거행되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https://n.news.naver.com/article/421/0006307073?sid=104|추모]]를 하였으며, 장례식 당일이 아닌 9월 1일 모스크바 중앙 임상 병원에 방문 및 조문해 붉은 장미를 헌화한 뒤 관에 손을 얹고 있다가 성호를 긋고 자리를 떠났다. 장례식에는 일정상 불참했다. 완전 [[국장]]으로 [[장례]]를 치르지 못한 [[소련]]의 최고지도자 중에는 [[니키타 흐루쇼프]]도 있다. 그는 실각 후에 격리되어 지내다 [[1971년]] 사망하였다. 일반 방문객들의 조문은 3시간 30분 가량 진행되었으며 가디언지에 따르면 조문한 러시아의 자유주의 계열 시민들은 고르바초프를 영웅이라고 칭송하였고, 수천 명의 인파가 고르바초프를 조문하기 위해서 조합회관에 방문하였다. 장례식 당일 모스크바 도심의 경비는 삼엄했는데 무장한 병력들과 차량들이 곳곳에 배치되었다고 한다.[[https://www.theguardian.com/world/2022/sep/03/mikhail-gorbachev-funeral-moscow-putin-too-busy-to-attend |#]] [[https://n.news.naver.com/article/001/0013408831?sid=104|#]],[[https://n.news.naver.com/article/366/0000837817?sid=100|#]] 한편, [[발트 3국]]은 독립 시도를 유혈 진압했던 것을 이유로 추모를 가지지 않았다.[[https://m.yna.co.kr/view/AKR20220901024100009?section=international/all|#]]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https://twitter.com/EmmanuelMacron/status/1564899693531914240?cxt=HHwWgICz4dz-0bcrAAAA|#]],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https://twitter.com/BorisJohnson/status/1564727984719814662?s=20&t=Kt0_rZHRxfilMv5C5R2l4g|#]]도 애도를 표했다. 헝가리의 [[오르반 빅토르]] 총리는 장례식에 직접 방문했다.[[https://www.youtube.com/watch?v=ZpoNtRydGY0|#]] 고르바초프 시절 소련과 수교를 맺었던 한국에서는 [[윤석열]] 대통령이 조전을 보냈다. 윤 대통령은 조전을 통해 "고인은 대립과 갈등의 냉전 시대를 종식시키고 화해와 평화를 끌어낸 지도자이자, 한국과 러시아 간 우호, 협력 관계의 확고한 틀을 마련한 선구자였다"고 평가했다. [[소련]] 최후의 지도자인 고르바초프가 사망함으로써 '''소련의 최고 지도자들은 모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그리고 본인이 직접 [[냉전]]을 종식시키고 [[탈냉전]] 시대를 개막시켰으나 '''세계가 다시 [[신냉전]]으로 돌입하는 것을 보고 잠들게 되었다. 그리고 말년에는 푸틴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일으키면서 러시아와 서방간의 관계가 소련 시절 그 이상으로 최악이 되고말아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지경까지 가서 러시아에 암울한 미래가 도래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또한 고르바초프 사망 후 약 열흘이 지나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 석 달 이후 [[장쩌민]] 전 중국 주석이 사망하면서 고르바초프와 동시대에 활동했던 주요국 지도자들도 같은 해에 세상을 떠났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